기억이란 이름의 조미료

내가 한국사람임을 느낄 땐, 고향의 음식이 그리울 때다.

초반엔 스테이크, 햄버거, 케밥 따위를 해먹었는데, 그것도 정도가 있지. 우리나라 음식을 없는 조미료로 꽤나 만들어 먹었다. 미리 사간 된장으로 국을 끓이고, 한국 식료품점에서 산 콩나물과 고추장으로 콩나물국을 끓이고, 김치찌게며 김치볶음밥, 닭도리탕과 삼계탕 등등. 하지만 여긴 국간장과 참기름, 고추가루, 대추, 인삼이 없었다. (확실하게는 몇몇은 너무 크고 비싸 사지 않았다.) 음식이란 게 정성과 미묘한 조미료들의 조합으로 맛이 나는지라, 몇가지 빠트렸다고 해서 맛이 확 바뀌지는 않지만, 2% 부족한 맛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땐 ‘기억’이라는 이름의 조미료를 뿌린다.

다른 시선으로의 나

낯선 환경에서 바라보는 나는, 그 또한 낯설다.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나에 대한 나의 다른 시선이였다. 오랜 기간 나를 친구로 사귀는 사람들의 관계속에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지각하기란 어려울 터. 그들은 나의 잘못된 것도 어색하지 않게 그러려니 이해하게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익숙치 않은 공간에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 그것도 짧은 시간 별도의 의무감 없이 - 그들 오감에 느껴진 내 모습을 묘사당할 기회가 생기더라. 아 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일 수도 있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나에 대해 너무 무디게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런 자각이 어색해 부정을 하다가도 이것 또한 나의 일면이겠지 하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누가 그랬더라, ‘사람은 타인을 완전하게는 이해할 수 없어. 자기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타인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그러니까 인생은 재미있어.’ 라고. 그런 기분이였다. 때론 그런 인생에 가슴이 찢어지기도 하고, (유)희열에 우주의 중심이 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건가 보다.

알크마르의 저 고양이는 한껏 볕을 품으며 잠을 잘도 자더라.

p.s : 정확하게 저 인용구는 에반게리온 18화에서 카지의 말이다.

café terrace at night

크롤러 뮐러 개새끼!

고흐 작품이 230여점이나 있고, 내가 고흐의 그림에 빠져들게 만든 ‘밤의 까페테라스’가 있다기에 어찌 안갈 수가 있겠어? 하는 마음에 해뜨는 날만 기다렸다. 일련의 사건들, 늦잠, 기차를 두번 놓침, 엉뚱한 버스를 한시간 기다리다 네덜란드어로 적어둔 메모를 분석해서 겨우 탔다 등으로 인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Hoge Veluwe호헤벨루베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공원이 정말 엄청 크다. Arnhem 시가지 보다 더 크다!) 공원 입장권 판매 누님이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너 미술관 가려는 거지? 근데 지금 너무 늦었어. 5시에 문 닫거든. 그리고 여기서 꽤나 멀어.”라고 말했지만, 딱 ‘밤의 테라스’만 볼 심정으로 상관 없다고 티켓을 끊었다. 그러곤 입구에 준비된 자전거를 타고 정신 없이 밟았다! (이 자전거 발 브레이크더라. 첨엔 손잡이에 브레이크가 없어 불안했는데, 타다 보니 오히려 손이 자유로와 우왕굳!) 4시 30분 Kröller-Müller Museum 도착. 티켓 판매원에게 무세움카트를 내보이며 “들어가도 될까?” 불쌍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행히 들여보내준다. 20Km 경보 경기 속도로 단번에 그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한적했다. 그리고 거기엔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까페테라스’가 있었다. 땀이 비오듯 내 옷을 적셨지만, 그 순간 난 아를에 있는 까페 테라스에 있었다. 여름 밤에 어울리는 서늘한 바람과 적절한 사람들의 정겨운 수다, 가격은 싸구려지만 취했으니 맛은 좋은 와인을 마신 듯 했다. 이제 뉴욕에서 ‘스타리 스타리 나잇’만 보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눈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반전은 어떤 분이 친절히 내 자전거를 타고 가셨다는 것. 한시간은 걸어야 빠져나갈 수 있는 공원의 중심에서 망할을 외쳤다 ㅠㅠ

Zaanse Schans.

풍차는 미끼일 뿐, 진짜는 경취다. 해가 떴다면 당신은 럭키.

(알크마르가 좋다고는 하나 하루 웬종일 있을 것 까진 없어서 지나는 길에 잔세스칸스에 갔다.) 그곳엔 아주 잘생긴, 더욱이 친절하게 나무신(klompen)을 깎는 청년이 있다. 그에겐 사실 형이 하나 있다. 하지만 동생이 훨씬 잘생겼기에 눈웃음에서 빛이 나는 몇년전 부턴 관광객 상대는 동생에게 맡기고 있다. 확실히 기념품 판매수입이 부쩍 늘었다. 그런 사실이 씁슬하긴 하지만 자식들을 보고 있으면 본인 기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동생의 미소에 신발 하나라면 괜찮은 장사다.

풍차는 밀과 같은 곡식을 빻거나, 간척을 위해 물을 퍼올리는 펌프로 쓰였다고 한다. 이젠 풍차를 쓸 일이 없기에 이것 역시 관광객을 위한, 혹은 문화재 처럼 관리되고 있다. 존재하지만 이유는 없는 뭐 그런 것.

Koog-Zaandijk (코흐잔다잌)에 내려 몇분간 걷다보면 묘한 냄새를 맡게 된다. 된장 냄샌가? 간장 냄새 같기도 하고. 한번 더 훅하고 숨을 들이켜면, 아 이거 코코아 냄샌가? 다음번 숨엔 역시나 된장 냄새 같다. (잔다잌엔 1905년 ADM Cacao 라는 코코아 - cocoa는 영어, cacao는 불어다. 고로 같은 것을 지칭한다. - 가공 기업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코코아 냄새에 취해 걷다보면 잔세스칸스의 경취가 한눈에 들어온다.

풍차는 거들뿐. 이곳의 진짜는 거시적 경취다. 카메라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내 망막에 맺히는 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곤 눈으로 기억이란 이름으로 마음에 경취를 남긴다. 그것도 파노라마로다가.

Alkmaar.

여행 속 작은 여행은 이미 추억이 된다. 화려하지 않음이 매력인 도시.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에 섰다. 신호등과 상관 없이 지나려던 차가 멈춘다. 아 여긴 도시가 아니구나. 흔한 유럽의 도시, 그러니까 멋쟁이들이 높은 인구밀도로 살아가는 그런 도시에선 당췌 일어나기 힘든 일. 국민성 어쩌고 뭐 그런 게 아니라, 내 생각에 그들에겐 건널목에 선 사람들을 먼저 보내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도시에 비해서.

대부분 흔히 금요일 치즈 시장을 보러 간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관광객용 눈요기 - 금요일 치즈 시장은 예전 부터 내려오던 전통 치즈 시장을 재현하는 거라 한다 - 보단 근처 골목골목의 소소한 정취가 더 좋더라. 크기는 어릴적 뛰어 놀던 그 골목과 닮았지만 이국적인 정취가 뭍어나던 좁다란 길을 걷다 웅장하게 들려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성당에 들렀다. 그곳엔 다소 장난기가 베어있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날렵하고도 정확한 발놀림으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실제 연주는 생전 처음 본 신기함에 눈이 똥그래져 동영상을 촬영하는 어느 동양인을 향해 귀여운 표정을 지어주더라. 누구 말대로 종교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종교의 정취가 있는 장소와 성가곡은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만든다. 치즈는 작은 한 덩어리가(1킬로그램 미만의 동글한) 6유로 정도 한다. 이것저것 맛을 보고 고르는 재미는 보너스.

나이들어 살기 좋은 동네더라. 무엇보다 H&M이 2개나 있다! 헤이그 보다 오히려 교토 스러운 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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